
103MHz
시간이 흐르면 옛것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것이 대체한다. 미디어 매체 또한 그 흐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라디오, TV 등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대체했다. 하지만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미디어 매체들은 가끔씩 사람들의 향수를 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라디오가 아직까지 흔했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
“뭐 만들어?”
“라디오.”
“라디오…?”
“응, 부모님이 키트 사 주셔서.”
“헤….”
지나가면서 잠깐 관심을 보였던 같은 반 친구는 내가 만드는 것의 정체를 알고는 흥미를 잃고 카드 놀이를 하고 있는 저 무리로 떨어져 나갔다. 아직까지 조립보다 분해가 편한 나에게 부모님은 어느 날 이런건 어떠냐며 라디오 키트를 사 주셨다. 구조가 궁금했지만 집에서 많이 쓰는 물건이라 손을 대기 어려웠던걸 만들 수 있는 키트는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이런게 있었다니. 당장에 만들고 싶었지만 납땜 작업은 학교에서 하기 힘들기 때문에 집에서 바로 만들기 위해 설명서만 들고 왔다. 쉬는 시간마다 읽어 거의 외울 때쯤 되자 방과후가 되었다. 한달음에 집에 도착한 나는 공구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납땜은 여태까지 위험하다고 금지했었는데, 키트를 사 주시면서 납땜도 할 수 있게 된 점이 제일 좋았다. 부품 봉지를 뜯어 순서대로 나열한 뒤, 인두를 달구면서 다시 한 번 설명서를 훑어보았다. 음, 완벽할거야.
처음 하는 납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제대로 됐나 싶었던 부분은 납을 너무 적게 써서 툭 떨어지고,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많이 썼더니 옆 단자와 붙는 등 실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고 3일 정도 방과후를 모두 키트를 만드는데 썼더니 그럴듯한 라디오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납땜을 해서 만들어서 그런지 그 동안 만들었던 것들이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졌다.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 들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나는 부푼 가슴을 안고 배터리를 넣어 전원 버튼을 켰다. 치직거리는 백색 소음을 들으며 다이얼을 돌리자, 사람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된다…!”
그렇게 썩 음질이 좋진 않았지만, 처음 만드는 것 치곤 이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60, 61, 62, 점점 숫자를 올려가며 방송을 하나씩 들어보고 있을 때였다.
- 안녕.
분명 방송으로 하는 말일텐데도 귀에 딱 꽂힌 그 인사는 다이얼을 돌리던 손을 홀린듯이 멈추게 만들었다. 유달리 깨끗하게 들려서 그런가. 잠깐 손을 멈추고 있자 스피커 너머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 루이.
“…어?”
이 사람, 방금 내 이름 말하지 않았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가 라디오를 이곳 저곳 살펴보았다. 이상하게 제작된건 아닌데….
- 반가워. 이렇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어서 기뻐.
“너 누구야?”
순간적으로 이게 라디오란 것을 잊어버리고 말을 걸었다. 아, 이거 라디오지. 송신부를 만들지 않아서 저쪽에선 목소리가 닿지 않을텐데. 그나저나, 누구길래 나한테 말을 거는거지? 그것도 이렇게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라디오 전원을 꺼버렸다. 갑자기 조용해진 라디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두려움에 오소소 돋았던 소름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다음 목표가 눈에 선명해졌다.
“…일단 송신부를 만들어야겠어.”
송신부를 만든 뒤 저쪽에 물어보면 확실하겠지. 나는 다이얼이 가리키는 숫자를 째려보고는 창고를 나섰다.
103MHz. 잊을 수 없게 된 주파수였다.
*
키트의 도움 없이 송신부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설계도와 조립은 괜찮았으나 나이 때문인지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완성된 송신부는 겉으로는 허술해 보였지만 집에 있는 기성품 라디오로 시험해보니 잘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주파수를 103MHz 에 맞추고 마이크에 말을 걸었다. 처음 말을 걸었던 그 누군가처럼.
“…안녕.”
수신부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역시 그 때 들은건 잘못 들은건가. 낙심하고 있을 때, 스피커를 통해서 그 날 들었던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 루이.
처음 들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고운 목소리였다. 마이크를 쥔 손에 땀이 찼다.
“너는 누구야?”
설마 반복되는 단어만 송출하는 방송인건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멘트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상대방이 대답을 해왔다.
- 나는, 음…. 요정…이라고 해둘까?
“요정?”
- 응. 라디오의 요정.
“…거짓말.”
요정 같은 것을 쉽게 믿기엔 나는 의심이 많았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 이런…. 음, 모습은 볼 수 없고 대화만 할 수 있으니까, 요정이지.
“펜팔 같은거야?”
그러고 보니 어제 수업 시간에 펜팔이란 것에 대해 배웠던 것이 기억났다.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로 편지만 주고 받는 사이를 펜팔이라 한다고 했다. 펜팔이라는 단어를 들은 그는 황급히 맞장구를 쳤다.
- 아, 그래. 펜팔 같은거지. 우리는 편지 대신 라디오인거고.
“흐응…. 그렇구나.”
아직까지도 조금 의심은 갔지만 펜팔이라는 것에 흥미가 있기도 했고 직접 만든 라디오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람과의 연락을 계속 이어가보기로 했다.
“이름이 뭐야?”
- 나는 카이토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 후후, 글쎄. 나는 루이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니까?
“…? 그게 무슨 소리야?”
- 말했잖아. 요정이라고.
요정이…진짜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요정 같은건 없는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니 사실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카이토도 라디오를 만들었어?”
- 다른 사람이 만들어줬어.
“그렇구나.”
- 물론, 거기에 루이도 도움을 주긴 했지만.
“내가…?”
알쏭달쏭한 그의 말에 반문하자 반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구를 도와준 적이 없는데.”
- 누구든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돕기도 해.
루이도 그렇고. 더더욱 알 수 없는 그의 대답은 잡지에서 본 수수께끼보다 더 어려웠다.
“어려워….”
- 나중에 알게 될거야.
“루이! 저녁 먹으렴!”
“앗….”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토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네왔다.
- 가야 되지? 다음에 또 보자. 언제든 이 주파수로 말을 걸어줘.
“…응.”
라디오의 전원을 끄고 밖으로 나가기 전 다시 라디오를 돌아 보았다. 평범한 라디오에 그저 송신부가 붙었을 뿐인데. 무언가 특별한 부분이 있었던걸까? 의문투성이를 가진 채로 나를 재차 부르는 부모님을 향해 달려갔다.
*
카이토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방으로 달려와 라디오를 켰다. 신기하게도 카이토는 내가 말할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요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다.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 카이토는 열심히 들어주었다. 가끔씩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카이토와 연락하면 할 수록 그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카이토는 자신의 얘기는 쉽사리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 얘기하게 되면 은근슬쩍 내 얘기로 빠지는 등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저녁을 먹는 도중 내가 만들었던 라디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루이, 저번에 주었던 라디오 키트는 어떻게 됐니?”
“아, 그거 다 만들었어요.”
“보여줄 수 있니?”
“네!”
나는 먹던 수저를 놓고 방으로 달려가 라디오를 들고 나왔다. 부모님은 송신기까지 달린 라디오에 놀란 눈치였다.
“세상에, 이 마이크도 직접 단거니?”
“네. 상대방하고 얘기하려고요.”
“상대방?”
“카이토라고…같이 대화하는 친구가 있어요.”
나는 내심 자랑스러워하며 라디오의 전원을 켰다. 주파수는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는 103MHz. 나는 마이크에 대고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 카이토.”
하지만 웬일인지 스피커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끼고 여러 번 말을 걸었지만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이상하다….”
“후후, 상대방도 밥을 먹고 있나봐.”
“그럴 리 없을 텐데….”
“카이토, 들려?”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러보았지만 고요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후후, 나중에 연결되면 불러주렴.”
“…네….”
“근데…미국에서 만든 키트라 그런가 100MHz 이상으로 있구나.”
“네?”
“일본은 100MHz 가 넘어가는 라디오 주파수는 없거든.”
“어…?”
“일부러 100MHz 가 넘어가는 주파수로 골랐구나. 똑똑해라.”
그런건 처음 듣는 얘긴데. 부모님의 손에 이리저리 돌아가는 다이얼이 꼭 불안한 내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럼 정말로 카이토는 나를 위해서 통신을 해준건가? 하지만 어떻게? 누군가가 라디오를 만들어 줬다고 하는데, 카이토도 나와 같이 일본이 아닌 곳에서 제작된 키트를 가지고 만든 라디오를 쓰는건가?
“…저, 저녁 여기까지만 먹을게요.”
“그만 먹을거니? 그러려무나.”
“잘 먹었습니다.”
나는 부모님의 손에서 라디오를 받아 황급히 방으로 도망쳤다. 다른 주파수로 맞춰진 라디오에서는 볼품 없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토와 얘기할 때처럼 깨끗하고 고운 소리가 아니었다. 이제 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처음 만든, 기성품이 아닌 라디오가 그렇게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었을 뿐더러,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릴 수는 없었다. 라디오를 항상 틀어놓고 있지 않다면 자신이 말을 걸 때마다 대답을 해줄 수도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일들이 하나씩 의심이 가기 시작했고,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갔다. 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라디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카이토.”
- 안녕, 루이.
여느 때처럼 자신에게 대답해준 카이토가 지금은 몹시 어색해 보였다.
“왜 아까는 대답 안 해줬어?”
- 아…. 못 들었어. 신호가 닿지 않았나봐.
거짓말. 여태까지는 잘 대답해 줬으면서. 식탁까지는 그렇게 멀지도 않았는데. 카이토는 혹시 가짜일까? 누군가가…어쩌면 부모님이…나를 위해서 연기하는게 아니었을까? 갑자기 카이토와의 추억들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카이토는…대체 누구야?”
- ….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남은 것만 같았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그만큼 여태까지 대화를 나눴던 카이토가 보고싶었다. 카이토와 얘기하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카이토가 내 안에서 차지한 지분은…너무나도 커져있었다. 카이토가 나에게 계속 거짓말을 해왔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흑…,”
- 루이….
“흐아앙…. ‘카이토’ 가 보고싶어….”
- 아….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스피커 너머로는 작은 숨소리만이 들렸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까,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눈물이 잦아들 때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
“흡…, 히끅.”
- 루이, 나는….
카이토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싶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 언젠가 정식으로…만날 수 있을거야. 그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닿게 돼서….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 이젠…그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네.
알 수 없는 말을 한 카이토가 다시 한 번 나에게 사과를 건넸다.
- 미안, 루이. 내 욕심이 과했어. 이젠…연락이 안될거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카이토가 거짓말을 한 것은 속상했지만, 그렇다고 그와의 연락을 끊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싫어…!”
- 잠깐 헤어지는거야. 언젠가…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어.
“싫어, 카이토, 잠깐만!”
- 정말 미안해.
그의 사과를 끝으로 라디오에서는 여느 때처럼 깨끗한 고요가 아닌 지직거리는 백색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쳤던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카이토와 더 이상 연락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등 뒤에 진득하게 붙어왔다.
*
오랜만에 방 정리를 하다 보니 먼지 쌓인 라디오 하나가 나왔다. 미제 키트로 만든 듯한 라디오에는 조잡한 송신기가 붙어있었다.
“어라, 이건….”
분명 맨 처음 만들었던 라디오인 것 같은데. 뭘 들었더라. 전원을 키기 전에 살펴보니 라디오는 103MHz 에 맞춰져 있었다. 송신기까지 붙어있는걸 보아선 방송이 없는 주파수로 누군가와 대화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 당시에 대화할 사람이 있었나? 의문 투성이인 채로 라디오 전원을 키니 역시나 시끄러운 잡음이 들렸다.
“어이쿠….”
귀를 찌르는 소음에 다시 전원을 끄자 마치 누군가와 짠 듯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루이! 오늘 세카이 가는거 잊지 않았지?]
맞다, 이렇게 여유롭게 방 정리할 시간이 아니었지. 나는 라디오를 책상에 그대로 둔 뒤 untitled 를 재생했다.
“루이! 늦었잖아!”
“미안, 방 정리를 좀 하느라.”
“방 정리?”
“응, 예전에 만들었던 것들.”
“우와아…. 뭐 만들었는데?”
에무가 눈을 빛내며 호기심을 보였다.
“아까 발견한건 라디오…?”
“헉, 라디오?!”
“어라, 루이도 왔구나.”
등 뒤에서 불쑥 카이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목소리도 이렇게 차분한 목소리였는데….
‘어?’
뭔가 위화감을 느낄 때쯤, 에무가 마침 카이토에게 라디오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있지, 카이토 오빠! 루이가 옛날에 만들었던 라디오를 찾았대!”
“라디오?”
“응, 송신기가 붙어있던 걸 봐선 누군가랑 대화를 했던 것 같아.”
“라디오로 대화를 할 수 있어?”
모두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고 쳐다보았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후후, 라디오는 송신기를 붙이면 작은 라디오 기지국이 될 수 있거든.”
“신기하다….”
“나도, 나중에 볼래!”
“어릴 때 만든거라 좀 조잡하지만…, 그래.”
내가 긍정의 답변을 내비치자, 카이토가 물음을 띄웠다.
“루이가 누구랑 대화했을지 궁금한걸.”
“그러게. 그 때 친구가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한 얘기 아니야…?”
누구와 대화…. 내가 대화했던건 대체 누구였을까.
“그러게. 누구랑 대화했더라…. 굉장히 차분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름이….”
골똘히 생각하다 우연히 카이토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응?”
“왜 그래?”
그래, 내가 왜 잊어버렸을까. 103MHz 를 타고 나와 대화했던 그 사람을.
“아냐, …이름은 역시 너무 옛날이라 생각이 잘 나지 않네.”
카이토가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비밀이야.’
그런 그에게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 2024. 뷰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