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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THz

(※ 소재 제공해주신 자몽님(https://x.com/Gqaws123) 감사드립니다.)

카미시로 루이에게는 어린 시절 아파서 집에 혼자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주 꼬꼬마 시절은 아니고 네네와 인어공주 뮤지컬을 보고 난 직후 한창 뮤지컬 놀이에 빠져있던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열이 많이 나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엄마가 간호를 해주었는데 잠시 자고 일어나니 집에 혼자였다. 분명 엄마가 아까 루이가 잠들면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셨었다. 루이는 납득했다. 그래서 집이 비었구나.

집이 조용하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평소 밖에서 들려오던 사람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차들조차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다. 이 고요가 낯설고 서글프다. 침대는 언제나처럼 폭신하고 이불은 보드랍다. 품에 안은 애착 오리너구리 인형도 말랑말랑하다. 그런데 왜 이럴까. 왜 슬플까? 열이 있기 때문일까?

어린 루이는 축축 가라앉는 몸을 일으켰다. 히잉. 엄마 보고 싶어. 네네랑 놀고 싶어. 금세 눈물이 났다. 하지만 초등학생답게 눈물을 꾹 참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루이에게는 라디오가 있었다. 재난 시에 사용하는 용도로 만들어지고 건전지로 작동하는 조그마한 은색 라디오다. 보통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AM과 FM만 있는데 이 라디오는 조금 달랐다. AM과 FM에 더해 THz를 수신할 수 있다. 미래에는 THz-테라 헤르츠도 통신 주파수로 쓰일 수 있대. 그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테라 헤르츠가 나오도록 루이가 직접 개조한 라디오다. FM을 숫자가 가장 많은 주파수부터 하나씩 맞춘다. 120, 104, 그리고 78.1까지. 그것이 끝나면  AM의 주파수를 맞춰본다. 이번에는 78.1에서 140까지.

그리고 나면 무언가 수신될 리 없는 테라헤르츠의 주파수를 맞춰본다.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계속 나온다. 그래도 누군가가 이 테라헤르츠를 통한 통신을 개발하여 신호를 보낸다면 그걸이 라디오가 수신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주파수 맞추는 버튼을 돌린다. 그리고 오늘,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치치직거리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루이 군?」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 기계음이 섞인 성인 남성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또렷한 발음으로 몹시도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불렀다.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이제 침대로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어.」

그 어조는 온화하면서도 엄격하다.

 

「봐봐. 대답을 못할 정도로 열이 올랐잖아. 친구들이 걱정할 거야.」

 

“…. 이제 친구는 네네 뿐이에요. ”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기억해 낸다. 아, 이건 라디오지. 쌍방향 수신이 아니라서 저 목소리의 주인은 내 대답을 듣지 못하겠구나. 잠시 잡음이 들리고 다시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야 물론 루이 군이 낫기를 기다리고 있지. 나도 연출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한 호흡 사이를 두고 그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응, 물론이지. 루이 말고 누구와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어? 우리들 모두 루이와 함께 공연하길 기다리고 있어.」

 

“당신은…. 누구예요? 무대에서 쇼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자, 어서 침대로 돌아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문장을 끝맺은 순간 라디오는 다시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버튼을 돌려도 그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고 어린 루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어느 평행 세계의 나였을까. 그렇게 친구가 많고 연출을 기대하고 다른 친구들과 쇼를 할수 있는 나는.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을, 아마도 다른 세계의 루이가 너무나 부러웠다. 루이는 내렸던 열이 다시 올라 며칠을 더 앓아 눕고 말았다.

 

 

 

몇 년 뒤.

루이는 다시 열이 심하게 올라 학교를 결석했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천정에 떠 있는 알록달록한 풍선들을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운 꿈을 꾸었다. 언제였더라, 꽤 어릴 때 이렇게 열이 나고 아팠던 적이 있다. 그 때 만지작거리던 라디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목소리는 세카이에서 만나는 카이토 씨의 목소리와 꽤나 흡사했다. 루이는 휴대폰을 흘낏 돌아본다. 그 카이토가 휴대폰으로 몸을 내밀고 드물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카이토의 잔소리에 영혼 없는 대답을 하던 루이는 기어코 오래 전에 개조한 그 때 그 라디오를 구석에서 찾아냈다.

 

“아, 찾았다.”

「…루이 군?」

 

주파수는 변함없이 841THz. 기계음이 섞인 다정한 목소리는 분명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이제 침대로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어.」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그는 현실에는 홀로그램으로밖에 나올 수 없다. 루이가 쓰려져도 일으켜서 침대에 눕힐 수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도 없으니 이렇게 잔소리를 해서라도 침대에 눕히고 싶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이는 알고 있다. 이 목소리가 과거에 닿는다는 사실을. 질투가 되어 어린 자신을 울리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에 ‘어딘가의 나에게는 같이 쇼를 할 친구가 있으니까 어쩌면 언젠가 나에게도’ 라는 작은 희망이 품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카이토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짓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이토가 입을 열었다.

 

「봐봐. 대답을 못할 정도로 열이 올랐잖아. 친구들이 걱정할 거야.」

아아, 그 때 그 말이다. 틀림없어.

“잠시 생각할게 있었어, 카이토 씨. 그런데 미쿠와 인형들은 어때?”

「그야 물론 루이 군이 낫기를 기다리고 있지. 나도 연출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카이토 씨가?”

「응, 물론이지. 루이 말고 누구와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어? 우리들 모두 루이와 함께 공연하길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자, 어서 침대로 돌아가.」

 

 

 

루이는 카이토의 말에 후후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엎어졌다. 과거와는 달라진 침대지만 여전히 폭신폭신하고 이불은 부드럽다. 괜찮아, 혼자가 아니야. 과거의 자신에게 전하듯 루이는 중얼거렸다. 카이토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루이 군, 많이 힘드니? 네네에게 잠깐 와서 봐달라고 할까?」

“아니, 조금 더 자면 괜찮을 거야."

카이토가 그제야 웃는 낯을 한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을 눈꼬리에 달고 있다. 루이는 그런 카이토가 좋다.

“카이토 씨, 나 잠들 때까지는 옆에 있을 거죠?”

「물론이지.」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열에 들떠 지친 몸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흥분한 정신이 천천히 잠의 세계로 가라앉는다. 그 세계에는 루이에게 수신된 카이토의 목소리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며 언제까지나 떠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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